산행일시 ; 2008년 9월17일(수)
이동경로 ; 윗왕실-백학산-개머리재-지기재-신의터재-무지개산 갈림길-윤지미산-화령
산행시간 ; 11시간 45분(휴게시간, 간식시간 포함)
날 씨 ; 하루종일 맑음....
새벽 4시30분... 오늘은 제법 긴 시간의 산행이 예정되어 있기에 조금 일찍 눈을 떠다. 시간을 보니 한30분 더 자도 되기에 스르르...
앗~차... 싶어 눈을 떠 보니 6시20분이다...
에구구... 왜 이러는 겨... 마음이 풀어진겨... 허겁지겁 식사를 끝내고 그 와중에도 버리기 아까운 물로 할 짓 다하니 7시30분...
백학산을 향해 나서다.
바람은 제법 선선하고 아직 잠을 덜 깬 것인지 날벌레 넘들은 조용하고... 유유히 산길을 타고 넘는다.
갈길은 멀고 시간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급한 마음이면 혹시나 모를 안전에 유의하며 느긋하게 산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다.
'가다가 힘들면 신의터재에서 텐트를 치면 되고 그래도 안되면 중간 마을로 탈출하면 되고... 되고... 되고...' 쩜쩜쩜....
주위를 둘러보니 고만고만한 산이고 숲이 우거져 조망은 없다.
도토리가 지천에 깔린 길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다.... 미끄덩..... 허걱.... 혹시 도토리에 미끌어져 보셨는지....
난생 처음 경험이다.... 이런 오늘 진짜 조심해야 겠구나....
숲 사이로 난 길을 걷다 우측 조그만 틈새로 조망이 잡힌다.
짙은 운무에 휩싸인 산자락들.... 아.... 잠시 쉬며 보기 드문 구름의 휘몰아 짐을 구경하다.
그렇게 또 돌고 돌아 백학산을 오르고....
<백학산으로 오르다 만난 산허리에 걸린 운무...>
<백학산 정상의 쉼터...>
<백학산 정상에 서다>
<백학산을 지나 임도를 만나다>
<임도를 따라 걷다... 처음으로 고민에 빠진 갈림길.. 중간 계단으로 오르는 길과 좌측 편안한 길.... 똑 같이 붙어 있는 대간표시기에 잠시 고민... 좁은 길로 가라는 말따라 중간 계단길이 대간길....>
돌고 돌아 내려서는 길.... 임도를 만나고 포도 과수원을 지나다.
시간상 개머리재에 가까워 질 무렵 포도과수원을 또 만나... 주위를 둘러보니 중년부부가 포도를 수확하고 계시다.
먹음직스러운 포도, 어르신 부부, 주위에 보이는 시원한 물통, 모든 게 너무도 완벽하지 않은가....
넉살 발동.... 어르신께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포도를 구입할 수 없느냐 여쭈었더니 선뜻 두송이를 주신다.
상품으로 팔 게 아니니 먹어라면서... 그리곤 아이스 박스를 가리키며 시원한 물도 있으니 쉬면서 먹고 가라신다.
포도 한송이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고 있으니 이젠 부인되시는 분이 다섯송이를 더 갖고 오시며 더 먹어 라신다.
아.... 하.... 넉넉한 곳간에서 인심난다더니...
비가 안와서 포도 농사는 당도도 높고 작황이 좋지만 송이버섯은 올해 절단이시라며....
그래...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생각이 나는구나... 한 곳이 좋으면 한 곳이 나쁠 수 있는 법...
<사진에 담고자 하였으나 기어코 마다하신 넉넉한 인심과 후덕하신 아저씨의 뒷모습만 담는다>
<개머리재에 서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며 포도 세송이를 먹고선 포도값을 치루려니 한사코 손사레이시다.
얼음물 한잔을 더 얻어 먹고 인사를 드리곤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고 건네주신 포도 4송이를 싸서 베낭에 걸고 길을 나선다.
오늘 점심에 대한 걱정은 저~어 멀리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룰루랄라....
<지기재 도착전 넉넉함과 풍성함이 가득한 과수원을 지나며....>
<지기재에 서다>
지기재를 거쳐 신의터재로 향해 대간길을 가다 모처럼 만나는 암릉구간을 오르다 언뜻 스치며 지나치는 길에 익숙한 뭔가가....
잠시 서서 뒤돌아본다.... 돌복숭이다~아!!!
아~ 가을의 풍성함이여... 이번엔 회룡재에서 보다 양이 많다. '그냥 갈 순 없잔아~아~아~.....'
열너덧개를 먹는다. 시큼, 씁쓸, 달콤함이여....
<또 만난 돌복숭... 가을을 느끼게 하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
짬짬히 먹던 포도의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의터재에 도착하다. 시간은 오후 2시....
무지개산을 거쳐 윤지미산... 화령까진 빡빡하다. 잠시 쉬며 식수를 보충하기 위해 직진 대간길에 보이는 민가인지 창고인지로 확실치 않은 곳으로 가려다 정확한 정보가 없어 포기하고 좌측 도로를 따라 민가를 찾아 내려간 길이 10여분이 걸린다.
'아... 시간이 너무 걸리는데...'
첫번째 민가에서 식수를 얻고 나오려는데 어르신께서 잠시 기다리라며 또 포도 세송이와 사과를 하나 주신다.
허... 죄송스런 마음... 제가 드릴 껀 아무것두 없는데... 깊은 인사를 드리고 다시 대간길로 나선다.
직진 대간길 임도상에 있는 가옥은 민가였다. 마당엔 닭들이 놀고 한쪽엔 수도가 보인다.
이러~~~~언..... 무려 25분을 절약할 수 있었는데... 정확한 정보가 없어 포기를 했던 것이....
혹시 대간길을 나서는 분이 계시면 신의터재에서 직진 임도길 80여미터 전방에 있는 민가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음을 알아두시길...
<신의터재에 서다... 비수세식 화장실 있음>
[신의(新義)터재] 신의터재 표지석 뒷면에는 재의 내력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신의터재 내력,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 라 불리었으나, 일제 때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 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저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다. 1996년 12월 상주시장」
[의사절곡김선생준신유적비(義士節谷金先生俊臣遺蹟碑)] 신의터재 표지석 옆에 세워놓은 김의사의 유적비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이 비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창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시고 순국하신 임란 최초의 의병장으로서 의사사호(義士賜號)와 통훈대부사헌부집의를 추증 받으신 청도(靑道) 김준신(金俊臣)선생의 의거를 기리기 위해 세우는 것이다. 이곳 신의터 고개는 상주에서 약 20키로인데 북쪽으로 멀리 소백산맥에 연하는 고개이므로 삼백미터 고지 고개길은 험준하나 일단 여기에 올라와 보면 일대는 평탄하며 바옥한 농토가 많고 산천이 수려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다. 신의터 고개에서 판곡리로 향하는 길녘도 역시 순박한 마을 정경이다. 일찍이 고려말 황간현감이었던 청도(淸道) 김구정(金九鼎)선생은 절개를 지켜 벼슬을 버리고 조용한 이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의사공(義士公)의 바로 5대조가 된다. 사료에 의하면 이런 혈통을 받은 준신공은 임진년 4월 23일 대구 석전싸움터에 임하기 전 이미 의병장으로서 이곳에서 출정하였던 임란 최초의 의사(義士)였다. 석전싸움에서 임무는 다했으나 아군의 실전으로 대적하지 못하고 상주로 돌아와 북천전투에서 혈전끝에 많은 전과를 올리고 장렬히 전사하였으니 공의 나이 32세였다. 공의 고향인 판곡리에는 유지와 제단비, 그리고 낙화담 등 당시의 사적이 남아있거니와 이곳 신의터 고개는 최초로 의병이 출정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에 더욱 유서가 깊은 곳이다. 향리의 선비로서 군졸을 거느려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장렬하게 순국하였으니 공을 임란 최초로 창의한 의사(義士) 혹은 열사의병장(烈士義兵將) 등으로 추앙하는 것이다. 임란중에는 많은 의병장이 곳곳에서 의거했다. 그러나 4월 23일 대구 석전까지 출정했던 의병장은 오직 김공 한 분 뿐이며, 곳곳의 많은 의병장들의 의거는 이후의 일들인 것이다. 이렇듯 역사적인 창의의 현장에 이 비를 세워 이 자리를 애국충열의 교육장으로 기리는 동시 김준신 의사공의 보국충정을 천추만대 되새기고자 한다.」
이젠 바쁘다.... 잘못하면 산속에서 해가 지겠다 싶어 발걸음을 빨리 하지만...
원래 느릿하게 걷는게 습관이라 제대로 속도도 붙질 않고 지치기만 하는지라 느긋하게 마음 먹기로 하다.
'그랴 가다가 안되면 윤지미 산 정상에서 야영하지 뭐...'
'포도,사과도 있겠다, 물은 한통, 그외 행동식으로 저녁과 아침을 때울 수 있겠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안전, 안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허벅지와 장딴지에 힘을 준다.
무지개산 갈림길을 향해 오르다 온산이 헤쳐져 있는 걸 보고 머리털이 선다. 아마 멧선생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듯....
멧선생들이 설치면 안되는디.... 걱정스런마음에 무지개산 갈림길을 스치듯 지나고... 지미랄을 외치며 윤지미 산으로 오른다.
왜 이렇게 오름길이 빡센겨... 마음이 조급한겨.... 체력이 딸리는겨.... 온갖 상념을 뒤로 한채 해가 지는 속에서 윤지미 산에 서다.
<무지개산 허리를 지나며...>
<윤지미산에 서다>
시간은 6시10분을 넘기고 있다.... 조타, 까짓것... 오기가 발동 산정상에서 넉넉하게 남은 포도를 먹어 치우곤 주위를 둘러본다.
어둠이 내리고 나무가 우거져 조망은 없다. 기념사진을 찍고 이젠 화령까지 탈출이다.
급경사를 구르듯 내려서고 컴컴한 숲길을 걸으며 두려움이 가시도록 중얼중얼 거린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가자 가자... 피안의 세계로 해탈의 세계로.... 가자 가자....
임도를 스치며 지나고 다시 산길로 접어들고 한참을 걸어가는데....
"푸르릉~..... 샥샥샥.... 푸르릉~...." 머리털이 곤두 선다.
이거이 멧선생 소린데.... 컴컴한 숲길에 급히 랜턴을 켜고 스틱으로 소리를 내려 고함을 한번 질러 본다.
조용하다... 갑자기 찾아 든 적막함.... 어둠....
다시 임도를 만나 내려가다 다시 산길로 접어 드는 길... 임도 저쪽으론 불빛이 보이고...
몇번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고함을 한번 지르곤 산길로 접어 든다.
컴컴한 산길이 두렵지만 얼마 걷지 않아 고속도로 불빛이 보이고......어둠을 불살라 버리듯 거대한 화령 표지석이 나타난다.
드뎌 화령에 도착한겨.... 옷은 땀에 절어 완전 물걸레다.
부항령의 아픈 기억이 생각나 바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 민가로 가다.
과수원을 끼고 있는 첫번째 민가에 들러 사정을 설명하곤 식수를 구하고 시원한 물한잔을 어르신께 부탁드렸더니....
선뜻 시원한 맥주 한병을 권하신다. 아.... 시원함이여...
두려움에 떨며 날아갈 듯 대간길을 지나 왔던 몸.... 갈증에 절은 몸이 시원한 맥주 한병에 취해 긴장이 풀린다.
감사함을 전하고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반찬이라도 주겠다면서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이야기 하라신다.
혹시 소주 사다 놓은 것이 있으면 한병을 부탁드렸더니 사다 놓은 것은 없고 마침 담배사러 나가려는 길이라면서 소주를 사다 주신댄다.
맥주 마시고 있으라면서 차를 몰고 나가신다. 아이쿠 황송함이여....
이넘의 대간길엔 소주가 왜 이렇게 먹구 싶은지.... 에구구... 이넘의 소주.... 알콜중독이여 뭐여....^)*....
너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만원을 드렸더니 정색이시다.... 에구구 또 실수한겨.... 꼭 소주값만 받으시겠다고 잔돈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천원을 드렸더니 흡족한 얼굴이시다....아...하.... 송구함이여....
물을 채우고... 세수를 하고.... 마을을 나서 다시 화령으로 돌아와 거대한 표지석 뒤에 텐트를 치고...
쐬주 한병과 라면과 멧선생 생각을 함께하며 고난했던 하루를 마감하다.
<소요금액 ; 1,000원>
간식비 ; 1,000원 - 소주(1)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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